미국 금융위기발(發) 고환율이 대한민국 유통업계를 강타하고 있다. 달러당 1000원을 밑돌던 환율이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1200원을 돌파하더니 7일엔 1300원도 힘없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 같은 추세라면 조만간 1400원은 물론 1500원 고지도 장담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외국 상품을 수입판매하는 유통업체들은 적신호가 켜졌다. 환율이 크게 올라갈 경우 고환율→가격인상→가격저항→소비자 이탈 등 악순환의 고리가 생기는 등 최악의 시나리오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해외 구매 대행업체들은 물론 명품을 병행수입하는 유통업체와 재벌 백화점들도 고환율 행보를 예의주시하며 긴급 회의를 연달아 개최하는 등 대책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환율 상승분 가격표 어떻게 반영할까 고심=백화점들은 올해 중반께 수입 명품에 대해 10~20%가량 가격을 올리는 등 1차 가격인상을 단행했었다. 문제는 내년 봄ㆍ여름 상품. 올해 가을 및 겨울 상품은 이미 계약을 마쳤지만 내년 봄ㆍ여름용 제품은 공급 계약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향후 환율 곡선에 비례해 봄ㆍ여름 상품을 중심으로 2차 가격인상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고환율에 따른 원가 부담을 이유로 유통업체와 마진율 조정을 요구하는 수입업체들이 늘고 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주요 명품 브랜드의 경우 인지도 때문에 환율 상승폭을 소비자가에게 그대로 반영하기는 어렵다"며 "고환율과 관련된 대책회의를 연일 개최하고 있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 우선 마케팅 비용을 줄이는 방법으로 가격인상을 최소화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시즌별로 수입 상품을 구입하는 백화점보다 병행수입업체들의 고환율 고민은 더 크다. 백화점에 비해 수입가격은 큰 편차가 없지만 유통마진을 적게 붙이는 방법으로 가격경쟁력 부문에서 유리한 입지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고환율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병행수입 업체의 대다수가 매출 반토막이란 최악의 사태를 맞을 수 있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환율이 1200원대에 진입한 9월 이후 병행수입업체들의 경우 해외 주문량을 대폭 줄이거나 개점휴업 상태에 직면한 곳이 속출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는 것.
구두 등 잡화를 취급하는 병행수입업체 김영환 대표는 "고환율 때문인지 9월이 다르고 10월이 또 다르다"며 "달러도 달러지만 명품 쪽은 90%가량이 유로화 결제인데 유로화도 1800원대까지 치솟았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에서 들어오는 제품도 달러로 결제하기 때문에 고환율의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해외 구매대행, 환율 추가 상승은 개점휴업 불가피=위즈위드, 191(옥션), 포보스(디앤샵) 등 해외 구매대행 유통업체들이 고환율 폭풍에 떨고 있다.
이들은 지난달 달러당 1200원을 넘어서는 등 고환율의 그림자가 엄습하자 전사 차원에서 긴급회의를 개최하는 등 대책방안 마련에 들어갔다.
요즘처럼 환율이 급등할 경우 가격 자체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실제 한 해외구매대행 사이트에서 9월 초 21만500원이던 트루릴리전 청바지의 경우 현재 30% 이상 오른 30만원에 달한다.
8월 말만 해도 28만7300원이던 코치 가방도 이달 들어 33만원을 넘어섰다. 이대로 가다간 결국 소비자들이 구매를 결정할 수 있는 가격 저항선이 무너진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이에 따라 일부 업체는 마케팅 비용을 늘려 할인쿠폰을 발행하는 등 고환율 불똥 차단에 고심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전략도 환율 1400원을 넘어 1500원 고지에 육박할 경우 약발이 먹히지 않을 공산이 크다는 게 전문가의 판단이다.
191 사이트를 운영하는 옥션의 관계자도 "아직은 미리 확보해둔 일정 물량을 동일가로 팔고 있다"며 "고환율로 상품가격이 오른다면 해외 구매대행 사이트를 이용하는 소비자가 격감하고 상품 주문도 15만원 이하 중저가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윤정현 기자(hit@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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